인공지능(AI)에 대한 관심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최근 업계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오픈AI의 AI 챗봇 ‘챗GPT’는 출시 40일 만에 가입자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이처럼 AI가 주목받으면서 재난 안전 분야에서도 AI를 적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기후 변화, 도시 구조 변화 등으로 규모가 큰 재난이 늘어나면서 안전을 위한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고, 그 가운데 AI 등 과학 기술을 활용한 안전 솔루션이 주목받고 있다.
재난 안전 분야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철저한 현장 관리로 위협 요인과 사고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AI는 예측하기 힘든 재난 상황을 예측하고 탐지하는 데 용이하다. 이에 안전 산업에서 AI의 역할은 앞으로 더욱 커질 전망이다.

지금 산업 현장은 AI 전성시대
지금의 산업 현장은 AI 중독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AI 기술의 도입이 활발하다. 특히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안전 사고를 줄이기 위한 기업들의 AI 도입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산업 재해 예방에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는 AI 기술은 바로 ‘비전(Vision) AI’다. 비전 AI 기술은 알고리즘을 통해 영상 내 정보를 인식하고 분석하는 기술이다. 영상에 찍힌 사람과 물체 등 다양한 객체를 인식해 이상 상황 여부를 판단한다.
특히 비전 AI는 산업 현장 내 설치된 CCTV에 찍힌 영상에서 위험한 장면을 포착해낸다. 예를 들면 굴착기·지게차 등 중장비 근처에 사람이 있는지, 작업자가 넘어지거나 장비에 끼여있지는 않은지, 안전 장비를 착용했는지 등 위협 상황을 감지한다. 또한 위험 상황이 발견됐을 시 곧바로 경보음, 음성, 문자 등을 통해 작업 관리자에게 알려 대응을 돕는다.
비전 AI 기술은 이미 산업 현장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국내의 대표적인 비전 AI 기술 기업으로는 인텔리빅스가 있다. 인텔리빅스는 현재 LG화학, SK레코플랜트, 삼성물산, 한화솔루션, 코오롱글로벌, LG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기업의 산업 현장에 AI 비전 솔루션을 공급하고 있다.

인텔리빅스 관계자는 “비전 AI 기술은 CCTV에 찍힌 다양한 영상을 분석해 현장 관리자에게 위협 상황을 전파하고, 육안 감시로는 부족한 안전 관리를 24시간 지원한다. 또한 다양한 이벤트 분석을 통해 현장의 위험 요소를 실시간으로 인지해 작업자의 안전을 확보해 주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비전 AI는 주로 작업자 안전 관리, 중장비 협착 인식, 위험 요소 인식, 작업 상황 감지, 위험 지역 접근 인식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협력사들은 비전 AI 기술이 모니터링 요원의 한계를 보완해 안전 사각지대를 찾아내고 지속적인 안전 모니터링으로 사람의 한계를 극복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해주고 있다. 앞으로 산업 안전 분야에서 비전 AI 기술은 IoT 센서 등 다양한 기술과 융합된 통합 관제 플랫폼 형태로 진화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AI 전문 기업 외에 국내 대기업들도 산업 안전을 위한 AI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현대건설은 최근 건설 현장의 안전 사고를 줄이기 위해 AI 기반의 영상 분석 기술을 개발했다. 보통 건설 현장에 적용하는 영상 분석 기술은 AI 전문 기업에 맡기는 방식으로 개발된다. 하지만 현대건설은 좀 더 건설업에 특화된 안전 솔루션을 개발하기 위해 회사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체적으로 ‘AI CCTV 영상 분석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은 건설 장비, 현장 작업자, 불꽃 등 약 200만 개 이상의 객체를 포함한 정보를 기반으로 구축됐으며, 실시간으로 건설 장비, 화재 위험 요소 등 위험을 감지한다. 현대건설은 향후 자사 내 AI·빅데이터 전담 팀을 필두로 건설 분야에서의 AI 기술 개발을 더욱 확장해 나갈 예정이다.

롯데건설도 지난해 9월부터 AI를 산업 현장의 안전 관리에 활용하고 있다. 롯데건설은 ‘위험성 평가’ 분야에 AI를 적용했다. 위험성 평가는 건설 현장 내 안전 사고 예방을 위해 작업에 대한 위험 요인 도출과 대책 선정을 미리 실행하는 과정을 뜻한다.
롯데건설은 사람에게 의존해 위험 요소가 누락되는 등 문제가 있던 위험성 평가에 AI를 적용했다. AI가 세밀하게 위협 상황을 탐지하고, 딥러닝을 통해 자체적으로 위험 요인을 발굴하도록 했다.
KT는 제조업 현장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끼임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라이다(LiDAR) 기술 기반의 AI 가상 펜스 솔루션을 개발했다. 제조업 현장의 경우, 끼임 사고 예방을 위해 사고 위험이 있는 기계에 작업자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물리적 펜스를 설치한다. 하지만 장치 점검이 필요한 경우 물리적 펜스를 설치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기존에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적외선 센서나 라이트 커튼을 활용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설정된 선이나 면을 통과하는 시점에만 감지가 가능하고, 진입을 하는 건지 빠져나가는 상황인지 구별할 수가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런 문제점을 AI 가상 펜스는 해결해줄 수 있다. 3D 라이다(LiDAR) 기술을 통해 입체 영역을 감지하고, AI 알고리즘을 통해 감지한 이미지를 분석해 객체를 식별한다. 이를 통해 위험 위험 구역 내 작업자의 존재 여부와 진입·퇴장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KT는 기아의 광주 오토랜드에 AI 가상 펜스를 공급했으며 향후 기아의 타 사업장으로 적용을 확대할 예정이다.

KT엔터프라이즈 관계자는 “AI 가상 펜스는 지난해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에 기업들이 잘 대응할 수 있도록 돕고 동시에 산업 재해를 줄이기 위한 취지에서 개발됐다. KT가 가진 AI 기술을 우리 사회에 필요한 안전 분야에 적용하게 돼 뿌듯하다. 앞으로 AI를 활용한 안전 기술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나갈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산업 안전에 활용이 가능한 AI 챗봇에 대한 연구 개발도 이뤄지고 있다.
2022년 한국방재안전학회가 진행한 ‘컨테이너 터미널의 위험성 평가 및 산업 안전 AI 챗봇 기술 적용 방안 연구’에 따르면, AI 챗봇은 산업 현장에서의 작업 현장의 모든 과정에서 안전 지킴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먼저, 산업 안전 AI 챗봇은 작업자가 현장에 투입되기 전에는 보호구 착용, 안전 수칙 숙지 여부를 점검하고 그 결과를 안전 관리 시스템에 기록·관리 한다. 작업 중에는 작업자의 상태, 이상 징후, 돌발 상황 등 현장 상황을 스마트 디바이스로 파악해 작업 관리자에게 전달한다. 작업 후에는 작업 시설, 장비 등의 이상 유무를 파악하고, 작업자의 건강 상태, 점검 확인 결과를 안전 관리 시스템에 기록한다. 이 과정에서 AI 챗봇은 작업자와의 대화를 통해 실시간으로 현장의 안전 관리 상황을 확인한다.
동서발전은 2021년부터 모든 임직원들이 AI 안전 챗봇 ‘세동봇’을 사용하고 있다. 세동봇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직원들에게 안전 지수, 안전 교육 자료, 안전 법령 정보 검색, 안전 점검 결과 등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또한 작업 관리자와 현장 작업자에게 공사 설계 단계부터 준공 단계까지 안전에 필요한 규정을 알려주고 재난 상황을 전파해주는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재난 예측, 이젠 AI가 책임진다
시민의 생명을 지키는 재난 안전 분야에서도 AI의 역할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2020년 한국방재학회가 진행한 ‘AI 기반의 지능형 재난안전관리체계 구축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급박한 재난 상황에서의 중요한 결정에서는 AI의 운영이 꼭 필요하다. AI를 통한 의사 결정과 판단은 인간의 이성적 제한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지난해 10월 발생한 이태원 참사에서도 많은 지적을 받았던 사항 중 하나가 지자체장 등 안전 관리 책임자들의 의사 결정과 판단 오류로 인한 늦장 대응이었다.
AI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적의 대응 조건을 학습해 의사 결정권자에게 알려주고 재난 상황을 빠르게 지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를 통해 재난 관련 제도와 법규, 현장 매뉴얼 간 충돌 없이 상황을 대응할 수 있게 돕는다.
정부는 올해 재난 예방과 대응에 필요한 AI, 로봇 등을 연구하는 개발 사업인 ‘2023년 현장 대응 부처 재난 안전 R&D’의 예산을 작년 대비 3.6% 증액해 총 2548억 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최근 각 재난 분야에 필요한 AI 기반의 재난 안전 시스템을 개발하고,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삼림청은 1월 31일 ‘전국 산불 방지 종합 대책’을 발표하면서 AI CCTV를 통한 산불 자동 감시 등 ICT를 활용한 산불 감시와 의사 결정 지원 과정을 고도화 하겠다고 발표했다. 작년 기준 6개소였던 AI CCTV와 연계된 ‘산불 예방 정보 통신 기술 플랫폼’을 올해 10개소까지 확대 설치한다. 이를 통해 자동으로 산불과 산림 인접지의 소각 행위를 감시한다.

환경부는 1월 3일 AI를 활용한 홍수 예보 체계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지난해 8월 발생한 국지성 집중 호우로 인한 침수 등 수해를 최소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전국의 1794개의 읍면동의 홍수 위험 지도도 2024년까지 구축한다. AI 홍수 예보 시스템이 적용되면 기존(3시간 전 예보)보다 예보 시간이 3시간 앞당겨지며, 수위가 어디까지 올라갈 것인지도 예측이 가능해 대응책 마련도 쉬워진다.
이태원 참사 이후 중요성이 높아진 인파 사고 대책에도 AI 기술 적용이 가속화된다. 행정안전부는 최근 모든 CCTV를 2027년까지 지능형 CCTV로 바꾸고, AI 기반 이상 징후 자동 감지와 영상 자동 분석 등 위험 상황을 재난상황실에서 상시 관리하는 체계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김성삼 국립재난안전연구원 박사는 “AI는 재난 안전 분야에서 로봇, 드론, 디지털 트윈 등 여러 기술과 결합돼 사용될 수 있다. 연구원은 최근 드론과 AI 카메라를 통한 재난 피해 지역 맵핑, AI CCTV를 활용한 실종자 고도 탐색 등 AI를 활용한 연구가 다수 진행 중이다. AI는 재난 상황의 감지부터 위협도 측정, 피해 정도 확인까지 모든 과정에서 활용도가 높아, 재난 분야에서는 앞으로 필수적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