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수술실 CCTV 의무 설치 법제화 시동, 남은 과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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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수술실 CCTV 의무 설치 법제화 시동, 남은 과제는?
  • 석주원 기자
  • 승인 2021.09.03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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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의 유예 기간, 해결해야 할 과제 많아

그동안 수많은 논란과 의료계의 반발을 불러왔던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이 8월 31일 마침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는 수술 중 사고가 발생했을 때나 폐쇄적인 환경인 수술실 안에서의 범죄행위 등을 수사할 때 객관적인 증거 확보가 어렵다는 수사 당국과 피해자들의 요구에 따라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수술실 CCTV 입법화의 역사

수술실 CCTV 설치가 처음 국회에서 논의된 것은 19대 국회로, 2015년 더불어민주당 최동익 전 의원이 환자나 보호자 요청 시 의료행위를 영상정보처리기기(CCTV)로 촬영하는 내용의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소관위에서만 논의되다가 19대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20대 국회 때도 더불어민주당의 안규백 의원이 동일한 내용의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 했지만 이 역시 소관위 논의만 거친 뒤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당시 발의된 의료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이 의료사고 발생 위협이 높은 수술 등의 의료행위를 할 때 환자나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해당 장면을 촬영해야 하며, 환자나 보호자가 의료행위 장면 촬영을 요청할 경우 의료 관계자들은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할 수 없도록 명시했다. CCTV 설치와 운영에 대한 일반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개인정보 보호법을 따르도록 했다.

한 가지 눈여겨볼만 한 내용은 19대 때 발의된 개정안에서는 의료 분쟁과 관련한 재판에서 수술 등 의료행위로 인한 의료 사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27.8%라고 언급됐는데, 4년 뒤인 2019년 발의된 개정안에서는 이 비율이 30%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는 의료 분쟁에서 CCTV 영상정보 등의 객관적인 증거 자료의 필요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유의미한 수치로 해석할 수 있다.

 

의료법 개정안 주요 내용

21대 국회에 들어서는 수술실 CCTV 설치 논쟁이 더욱 뜨거워지면서 지난해에만 세 건의 개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이번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의료법 개정안은 지난해 각각 발의된 세 건의 개정안에 대해 국회 논의를 거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21대 국회 의료법 개정안 발의 내역
21대 국회 의료법 개정안 발의 내역

본회의를 통과한 의료법 개정안(대안)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전신마취 등 환자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을 시행하는 의료 기관은 의무적으로 수술실 내부에 CCTV를 설치해야 한다. 이때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설치 비용을 지원할 수 있다.

2. 환자나 보호자가 요청 시 의료 기관은 의식이 없는 환자의 수술 장면을 의무적으로 촬영해야 한다. 의료 기관은 정당한 사유 없이 요청을 거부할 수 없다.

3. 의료 기관은 CCTV로 촬영한 영상정보가 분실, 도난, 유출, 변조, 훼손되지 않도록 안전한 관리 방안을 마련하고, 30일 이상 보관해야 한다.

4. 영상정보의 열람은 수사·재판 업무 수행을 위해 관계 기관이 요청하는 경우,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조정·중재 개시 절차 이후 환자나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 요청하는 경우, 또는 환자와 의료인 등 정보 주체 모두의 동의를 받은 경우로 한정한다.

의료 기관이 CCTV 촬영을 거부할 수 있는 예외 상황은 ▲수술이 늦어질 경우 환자의 생명이 위험하거나 심신에 큰 장애가 발생할 수 있을 경우 ▲위험도 높은 수술을 시행하는 경우 ▲전공의 수련 등 목적 달성을 현저히 저해할 우려가 있을 경우 등이다.

또한, CCTV 촬영 시 음성 녹음은 사용할 수 없지만, 환자와 수술에 참여하는 의료인 등 정보 주체 모두가 동의하는 경우에는 음성 녹음도 허용한다.

하지만 수술실 CCTV 설치 및 운영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우선 이번 의료법 개정안 시행이 공포 후 2년 후부터이기 때문에 빨라야 2023년 9월부터 적용받는다.

일반적인 법안이 공포 후 6개월 후 시행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늦게 시행되는 편인데, 이에 대해 국회 관계자는 의료 기관들이 CCTV를 설치하고 운영 인프라 구축 등에 필요한 시간을 주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후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를 지속적으로 반대해 왔던 의료 단체들은 일제히 비판과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의료계 관련 논란 발생 때마다 선봉에 서 왔던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해 대한의학회, 대한병원협회는 이번 의료법 개정안이 헌법에서 규정한 직업 수행의 자유 등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의료법 개정안을 찬성하는 의료 사고 피해자 및 유족 등은 개정안 통과에 대해서는 일단 환영하면서도 예외 조항의 적용 범위가 너무 주관적이고 확대 해석의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는 우려의 뜻을 나타냈다.

 

수술실 CCTV 의무화, 왜 필요한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발간한 ‘2020 의료분쟁 조정·중재 통계연보’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의료 분쟁 상담 건수는 2018년 일평균 266건으로 정점을 찍고 2019년 259.9건, 2020년 227.2건으로 점진적으로 줄어드는 추세에 있다. 분쟁 조정 신청 건수도 2018년 2926건, 2019년 2824건, 2020년 2216건으로 줄었다.

연도별 의료 분쟁 상담 건수(출처: 2020 의료분쟁 조정·중재 통계연보)
연도별 의료 분쟁 상담 건수(출처: 2020 의료분쟁 조정·중재 통계연보)

다만, 2020년의 경우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의료 서비스 이용자 자체가 줄어든 것도 의료 분쟁 건수 하락의 요인 중 하나로 보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 한 번이라도 의료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은 전체의 59.1%였는데, 이는 2019년 상반기 68.9%와 비교해 9.8% 줄어든 수치다.

그러나 이처럼 의료 분쟁 건수 자체가 주는 상황에서도 수술로 인한 분쟁 건수는 늘거나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5년간 감정 처리된 의료 사고 7040건 중 수술이 2705건(38.4%)으로 가장 많았다. 더욱이 2017년 417건이었던 수술 관련 분쟁은 2018년 625건으로 크게 늘었다.

전체 의료 분쟁 건수가 줄어든 2019년에도 수술 관련 분쟁은 691건으로 늘었고, 의료 서비스 이용 건수가 줄어든 2020년에는 659건으로 소폭 줄긴 했지만, 여전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의료 분쟁, 특히 수술과 관련한 의료 분쟁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객관적인 증거 자료를 찾기는 매우 어렵다. 환자의 의식이 없는 수술의 경우 수술실 내부의 상황은 수술에 참여한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 인력의 증언으로만 파악해야 하며, 이는 환자와 보호자 측에 불리하게 진술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의료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의사가 고의적으로 사고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는 점을 CCTV가 증명해 줄 수도 있다. 어느 입장에서든 CCTV가 촬영한 영상정보는 객관적인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더욱이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큰 논란을 불러온 대리 수술 논란과 성 범죄 등은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입법에 강력한 추진력을 부여했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이 시행되기까지 앞으로 2년이 남았지만 의료계의 반발과 헌법 재판소의 판단, CCTV 설치와 운영 및 관리 인프라 구축, 기타 의료계와 피해자 양측의 의견을 반영한 수정안 검토 등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을 생각하면 결코 여유 있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은 아니다.

이와 함께 수술실 CCTV 설치 운영의 기반이 되는 개인정보 보호법도 의료계 현실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점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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