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골목길은 왜 범죄율이 더 높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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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골목길은 왜 범죄율이 더 높을까?
  • 전유진 기자
  • 승인 2021.03.24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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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으로 범죄 예방하는 CPTED

1990년대 마약, 살인, 강도 등의 강력 범죄로 전 세계에 악명을 떨치던 뉴욕을 범죄로부터 안전한 도시로 만들겠다고 공언한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이다. 경찰력을 동원해 범죄를 소탕할 줄 알았던 시민들의 예상과 달리 그는 제일 먼저 뉴욕 거리의 낙서를 지웠다. 슬럼화된 도심과 범죄의 온상으로 전락한 지하철에 도배된 온갖 낙서를 지우고, 물리적 무질서를 제거해 사회적 통제 기능을 회복하는 일을 하면서 안전한 도시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1999년 뉴욕의 중범죄는 75%나 줄어들었다. 이처럼 줄리아니가 뉴욕의 범죄율을 줄일 수 있었던 데는 셉테드(CPTED,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 기법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셉테드는 주위 환경을 새롭게 디자인함으로써 범죄를 예방한다는 목적을 담고 있다.

 

단순히 낙서를 지웠을 뿐인데 범죄가 급감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미국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 1982년 발표한 깨진 유리창 법칙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 법칙은 깨진 유리창 하나를 내버려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퍼진다고 말한다. 실제로 연구자들이 구석진 골목에 2대의 차량 모두 보닛을 열어둔 채 주차해두고, 차량 한 대만 앞 유리창을 깨고 관찰한 결과, 보닛만 열어둔 멀쩡한 차량은 일주일 전과 동일한 모습이었지만, 앞 유리창이 깨져 있던 차량은 거의 폐차 직전으로 심하게 파손되고 훼손된 결과를 보여줬다.

일상에서도 깨진 유리창 이론을 쉽게 살펴볼 수 있다. 예컨대 무단 투기 금지라고 적힌 가로등 밑에 쌓인 쓰레기들이 그렇다. 쓰레기가 쌓여 있지 않다면 사람들은 그냥 지나칠 것이다. 그러나 쓰레기 하나가 놓여 있게 된다면 쓰레기통을 찾던 사람은 그 옆에 쓰레기를 버릴 것이고, 결국에는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그곳에 쓰레기를 버리려고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사소한 무질서를 놔두면 더 큰 문제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이론은 범죄에서 더 크게 작용한다. 스릴러와 같은 공포 영화를 볼 때면 꼭 등장하는 몇 가지 불문율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어두운 골목길을 걸을 때면 항상 범죄자와 맞닥뜨린다는 점이다. 셉테드는 범죄자,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큰 대상자, 범죄를 유발하는 환경과 같은 요소가 조성될 때 범죄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실제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과 어두운 골목길에서 범죄가 발생할 확률이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셉테드다. 셉테드는 범죄 행동을 유인하는 물리적 환경 특성을 변화시켜 특정 지역의 방어 공간의 특성을 높임으로써 범죄의 위험성을 감소시키는 전략이다. 이러한 물리적 환경의 변화는 사회적인 응집과 시민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고 궁극적으로는 범죄를 예방해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감소시킨다. 

 

 

범죄 예방 위한 필수 요소 4가지

셉테드는 1961년 미국 연구자 제인 제이콥스에서 시작됐다. 그는 본인이 사는 지역에 새로운 도시 설계를 고안해 범죄율을 낮출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당시 미국의 도시는 주거지역과 상업지역이 구분돼 있어 저녁이 되면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가 상업지역은 텅 비었고, 상점이 없는 주거지역의 거리는 사람이 오가지 않는 탓에 범죄에 쉽게 노출됐다. 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게, 술집, 빵집 등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을 주거지역에 배치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서로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자연스럽게 범죄를 감시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1970년대 이를 발전시킨 셉테드의 개념이 처음 등장하게 됐다.

이후 미국의 범죄학자인 제프리가 1971년 미국 국립법집행 및 형사사법연구소가 웨스팅하우스 전기 회사의 여러 시설에 대한 셉테드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셉테드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게 됐다. 이어 1972년 오스카 뉴먼 미국 뉴욕대 건축학과 교수는 주거하고 있는 곳에 거주자가 통제할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하는 ‘방어 공간(defensible space)’ 개념을 사용하면서부터 셉테드 연구는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뉴먼 교수는 범죄 예방을 위해 ▲영역성 확보 ▲자연스러운 감시 ▲자연적 접근 통제 ▲유지/관리 등의 4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먼저, 영역성 확보는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분리를 명확하게 인식하게끔 디자인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주민들이 사적 영역을 철저히 관리하면서도 잠재적 범죄자들이 들어오는 것을 심리적으로 막는다. 과거 마을 앞에 서 있던 장승이 이런 역할을 했다. 장승은 이곳을 넘으면 마을 사람들의 공간으로 진입한다는 신호를 보냈다. 현재는 아파트 단지 입구에 문설주를 설치해 이를 대신한다. 문설주에는 문이 없지만, 아파트 단지 안과 밖을 구분해 섣불리 침입할 수 없게 만든다. 이는 거주민들에게 심리적 편안함을 전달해주기도 한다.

자연스러운 감시는 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시설과 공간을 잘 보이는 곳에 놓고 잠재적 범죄자가 숨을 수 없도록 만든다. 따라서 유리와 같이 안팎에서 훤히 볼 수 있는 구조와 재료를 사용하고, 적절한 밝기를 유지한다. 또 여름에 나무가 무성히 자라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작은 나무를 심어 자연스럽게 범죄를 감시하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아울러, 범죄가 자주 일어나고 범죄 불안감이 큰 아파트의 지하주차장 안에 헬스장과 같은 주민 공동 시설을 개방형으로 설치해 주차장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게 만드는 것도 범죄를 억제하는 데 효과적이다.

자연적 접근 통제는 도로나 교통 패턴의 변화, 상징적 물리적 장애물을 사용해 잠재적 범죄자의 접근을 차단하거나 어렵게 만드는 설계 전략을 말한다. 이런 설계는 오래전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용했던 전략이다. 중국에서 12세기경부터 발전한 공동주택인 토루에서도 이런 설계를 볼 수 있다. 토루는 창과 출입문을 가능한 한 작게 만들어 외부인의 접근을 막았다. 이처럼 차단기 및 잠금장치 설치, CCTV 설치 등을 통해 범죄인이나 허가받지 않은 자의 출입 및 접근 가능성을 최소화한다.

 

 

중국의 공동주택 토루, 출입문을 작게 만들어 외부인의 접근을 막는다

유지/관리는 이미 적용된 셉테드의 원리나 전략들이 지속할 수 있도록 주민의 참여를 통해 만들어진다. 체계적 관리가 이루어지는 환경은 구성원의 만족도를 높여 애착을 통한 책임감을 강화하고, 사람들의 준법정신을 강화할 수 있다. 잠재적 범죄자에게는 해당 지역이나 공간이 지역주민들의 관심 속에 관리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범죄 행위를 위축시킬 수 있다. 따라서 지역 주민들이 책임감을 느끼고 설계된 환경이 유지 및 관리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셉테드 도입과 범죄 발생 건수 감소

그렇다면 셉테드를 적용한 도시들은 범죄율이 얼마나 감소했을까? 외국에선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셉테드를 도입했으며, 특히 미국과 영국은 도시 공간이나 건축물을 설계할 때 셉테드 지침을 사용하도록 의무화해 일찍이 그 효과를 보고 있다. 영국에서 CCTV 설치를 통한 감시 강화, 창문이나 현관 등의 보안 강화 같은 노력을 펼친 결과, 2004년 영국의 범죄율은 1995년에 비해 40% 이상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미국에서는 플로리다주가 1996년부터 마이애미 북부 주거지역으로 연결되는 78개 도로를 막는 접근 통제 셉테드를 도입한 결과,1996년 인구 10만 명당 6441건이었던 범죄 발생 건수가 2005년 인구 10만 명당 3974건으로 감소했다.

반면 국내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셉테드가 연구되기 시작했고, 최근 들어 제도와 설계가 활성화됐다. 2005년 ‘셉테드 가이드라인’을 개발해 경기 용인시 판교 신도시에 부분적으로 적용했으며, 2009년 서울은 뉴타운을 포함한 재개발지역에 셉테드를 반영하도록 했다. 이어 행정안전부에서는 ‘한국형 안전도시 시범 사업’으로 9개 지자체를 시범 선정했고, 여성가족부에서도 전국 초등학교 주변 통학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초등학교 주변 안전 지도 만들기’ 사업을 펼치고 있다.

민간에서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요즘엔 범죄로부터 안전한 정도가 주택의 가치를 결정짓기도 한다. 따라서 여러 건설회사에서 자체적인 셉테드 디자인을 개발하고 있으며, 한국셉테드학회에서는 국내에서 최초로 ‘공동주택 셉테드 인증제’를 실시해 2010년 인천 계양구의 한 아파트 단지를 최초로 인증하기도 했다.

특히, 서울시 마포구 염리동은 대표적 셉테드 사례로 손꼽힌다. 2012년 4월, 셉테드가 적용되기 전 염리동은 재개발 사업 지연으로 인한 슬럼화가 되면서 주민들의 범죄 불안감이 컸다. 이에 서울 범죄 예방 디자인 시범 마을로 선정하고, 마을을 활성화할 수 있는 산책로인 ‘소금길’(1.7km)을 지정했다. 또한, 마을 곳곳에 운동 시설과 안내 표지판, 방범용 LED 번호 표시등(69개)을 설치하고 안심 주택(6개소)을 지정하는 등 셉테드를 통해 환경을 개선했다. 그 결과 마을 주민들의 범죄 불안감이 9.1% 감소하고 마을에 대한 애착심은 13.8% 증가했으며, 78.6%의 범죄 예방 효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외에도 2014년 부산시 금정구 가마실 행복마을 등의 아동 안전 지킴이집, 치안 올레길 등에 셉테드 기법을 적극적으로 적용한 결과 5대 범죄(살인·강도·절도·성범죄·폭력)가 65.9% 감소한 것으로 분석되기도 했다.

 

소금길이라는 이름과 함께 환경을 변화시킨 염리동 (출처: 서울주택도시공사 공식 블로그)

그러나 일각에서는 염리동에 적용된 셉테드의 효과를 범죄전이값(WDQ, Weighted Displacement Quotient)’으로 관찰한 결과, 셉테드 적용 지역에 한해서 범죄에 대한 주민들의 공포심과 재산 관련된 범죄는 줄었지만, 강력 범죄에는 효과가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반대로 인근 지역의 범죄율은 증가하는 양상이 나타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이와 같은 효과를 범죄 전이라고 지칭하는데 셉티드의 대표적인 부작용 중 하나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셉테드에 대해 범죄 예방 효과를 인정하면서도 셉테드가 모든 지역·공간·범죄에 유효한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셉테드는 어디에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서 범죄별 감소율도 다 다르고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으므로 오랫동안 지역에 특성을 관찰하고 고려해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또한 “셉테드는 지역의 범죄 환경이나 시설 특성 등을 자세히 분석 후 도입해야 하며 지속적 관리가 뒷받침돼야 한다. 아울러, 환경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그만큼 관심을 두고 참여해야만 셉테드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범죄로부터 안전을 확보하는 일은 생존과 관련된 문제로서 다른 어떤 경제적 가치나 정치적 이익보다 먼저다. 단순히 범죄가 경찰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경찰, 주민, 그리고 도시 건축 공간을 창조하는 설계자 모두가 협력해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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