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촬영물 피해자의 인권을 지키는 스타트업, ‘에스프레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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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촬영물 피해자의 인권을 지키는 스타트업, ‘에스프레스토’
  • 최형주 기자
  • 승인 2020.06.1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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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촬영 등의 사회문제, IT 기술로 해결 가능함 증명할 것

IT/ICT 기술을 활용해 불법 촬영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불법 카메라를 탐지하는 ‘릴리의 지도’와 불법 유포물 삭제 솔루션 ‘잊혀질 권리’를 개발하고 있는 국내 스타트업, 에스프레스토의 손동현 대표를 만나 에스프레스토가 생각하는 피해자 구제란 무엇인지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주>


최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성범죄자,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과 n번방 운영자 문형욱이 각각 경찰에 붙잡혀 신상이 공개됐다. 뉴스를 통해 보도된 이들이 행한 극악무도한 범죄 행위에 분노하면서도 이제라도 붙잡혔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아직 멀었다.

법무부가 지난 2월 발표한 ‘2020 성범죄백서’에 따르면, 카메라 등을 이용한 불법 촬영 범죄 건수는 2013년 412건에서 2018년 2388건으로 5.8배나 늘었다. 특히 이 같은 불법 촬영이 지난 2013년 신상등록 성범죄에 포함된 이후, 동종 범죄로 재등록되는 범죄자 비율은 무려 75%에 이른다.

 

정의감으로 뛰어든 불법 촬영 피해자들의 권리 구제 사업

에스프레스토의 시작은 사실 디지털 성범죄와는 거리가 멀었다.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손동현 대표는 인공지능 영상 추측 기술로 사업을 시작했고, 야구 영상 중 하이라이트를 자동 추출하는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해 상업적 성과도 이뤄냈다.

손 대표는 “우연한 기회에 리벤지 포르노와 불법 촬영 등으로 인해 고통받는 피해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에스프레스토의 인공지능 및 영상에 관한 기술력이 이들의 ‘안심할 권리’와 ‘잊혀질 권리’를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릴리의 지도와 잊혀질 권리의 개발을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에스프레스토는 젊은 열정들이 모여 피해자 입장을 고려하는 스타트업이다. 최근 디지털 장의사 서비스가 유행함에도 이 같은 솔루션을 ‘서비스화’하지 않고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배포하는 이유는 피해자들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손동현 에스프레스토 대표
손동현 에스프레스토 대표

 

피해자에 2차 피해 가하는 공권력과 디지털 장의업체

손동현 대표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는 공권력에 의한 구제와 민간 업체를 활용한 구제의 두 방법이 있다. 그런데 공권력 구제의 경우, 본인 인증 등의 과정에서 피해자를 정신적 2차 피해로 내몬다.

디지털 장의사 서비스 등의 민간 업체를 이용한 구제에도 문제가 있다. 지난 2017년 김삼화 전 국회의원은 “디지털 성폭력 피해 구제를 위해 만들어진 비영리민간단체와 관계된 웹하드사들이 몰카 영상을 유통하고 있다”며 웹하드사와 단체 간의 관계에 유착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손 대표는 “디지털 장의사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며 만난 한 20대 여성 A씨는 경찰 등을 통해 공권력 구제를 신청했다. A씨는 수사 과정에서 여성은 필연적으로 남자 수사관들을 일부 만날 수밖에 없었는데, 수사관들의 영상 확인 과정에서 A씨가 받는 스트레스가 극심했다”며 피해자 구제가 녹록치 않은 현실을 지적했다.

또한 최근 인천지검 부천지청은 디지털 장의업체 이지컴즈의 박형진 대표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방조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박 대표는 지난 2018년 음란물 삭제 대행 업무를 독점하게 해달라며 국내 최대 음란사이트 Y티비 운영자에게 600만 원을 건네고, 배너 광고를 게재해 수익을 올린 혐의를 받았다. 당시 부산지방경찰청은 박 대표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손동현 대표는 “불법 영상물 피해자 B씨는 디지털 장의 업체에 거금을 들여 불법 촬영 영상 삭제를 의뢰했고, 초기엔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자 다시 버젓이 해당 영상이유포돼 금전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어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지금까지 의혹만 제기되고 아직 밝혀진 사실은 없으나 디지털 장의 업체들 일부가 불법 영상물이 공유되는 웹하드 업체와 유착 관계에 있다는 것은 업계에 알려진 공공연한 사실이며, 피해자들의 이러한 스트레스와 금전적 손실을 완화하는 선한 가치 창출을 위해 릴리의 지도와 잊혀질 권리 애플리케이션을 기획해 개발하게 됐다”고 밝혔다.

 

1mm 몰래 카메라 렌즈에 특화된 ‘릴리의 지도’

손동현 대표가 릴리의 지도와 잊혀질 권리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며 집중한 것은 앞서 언급한 ‘피해자의 입장’ 이다.

우선 릴리의 지도는 기존 불법 카메라 감지 애플리케이션과 다르게 ‘1mm 크기 몰래 카메라 렌즈’를 탐지하는 데 초점을 맞춘 인공지능을 탑재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소형 몰래카메라 렌즈 감지에 특화됐고, 적외선 탐지와 자기장 탐지 등의 몰카 탐지 기능을 충실히 구현했다.

손 대표는 “기존에 출시된 가장 유명한 몰카 탑지 앱을 사용해도 1mm 크기의 렌즈를 찾는 것이 쉽지는 않다. 현재 인공지능의 정확도는 현재 85% 수준이지만, 리뷰 등의 사용자 경험과 머신러닝을 통해 지속적으로 탐지 정확도가 좋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2차 피해의 우려를 지운 ‘잊혀질 권리’

잊혀질 권리(가제) 애플리케이션은 기존 디지털 장의사들의 업무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가능하게 한 앱이다. 인공지능이 피해자의 영상을 특정 성인사이트의 불법 유포 영상들과 비교, 대조해 삭제 요청까지 가능하게 했다.

잊혀질 권리는 피해자의 영상에 편집이 있더라도 딥러닝을 통해 이미지 정보를 추출, 사용자에게 입력 받은 영상과 온라인에 있는 영상을 비교한다. 고속 비교를 위해 씬(Scene)을 구분한 후 이 중 대표 이미지만 추출하고 비교해 전체 영상의 수 많은 이미지를 비교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일련의 비교 과정을 처리할 때 필요한 스마트폰의 컴퓨팅 능력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스마트폰과 백단의 서버에서 작업을 분산해 처리한다. 이 때 디지털 장의사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인 재유포 이슈를 방지하고자, 스마트폰에서 서버로 넘기는 정보는 비교에는 의미가 있으나 원본으로 복구가 불가능한 상태로 전달하게 된다.

특히 에스프레스토의 영상 검색 기술은 지난 4월 KOLAS(Korea Laboratory Accereditation Scheme)로부터 인정받은 국제 공인시험기관 ‘와이스스톤’의 인증을 획득했으며, 약 10분짜리 인풋 영상과 평균 8분짜리 영상 18개와의 비교 속도가 약 0.01초 정도로 매우 빨랐다고 한다.

 

관건은 데이터 확보, 규제와 인식 바뀌어야

손동현 대표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며 가장 어려웠던 부분으로 ‘부정적 인식’과 ‘데이터 확보 문제’를 꼽았다. 우선 몰카 렌즈와 같은 초소형 오브젝트를 탐지하는 기업들은 몰카 탐지와 같은 시장에 진출하기 보다 기기 제조 공정에서 불량품 탐지와 같이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만 기술을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이다.

손동현 대표는 “물론 기업의 입장에서 이윤 창출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적 선택임을 안다. 하지만 고통받는 피해자들을 위해 예방과 구제에 기술을 활용하는 선한 가치 창출도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데이터 확보 문제의 경우, 최근 국회를 통과한 데이터3법 등을 통해 어느정도 해결될 수도 있겠지만, 에스프레스토의 잊혀질 권리는 앱 특성상 다수의 데이터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대해 손 대표는 “현재 각종 음란 사이트들이 정부 차단에 의해 한국에서 접속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기술 연구와 개발을 위해 이 같은 차단을 해제해 주고 접속을 합법화하는 발전적 규제가 있다면 더욱 많은 피해자의 권리를 구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손동현 대표는 “사업이 진행될수록 더 꼼꼼하고 편리하게, 피해자들을 위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예방을 위한 릴리의 지도, 구제를 위한 잊혀질 권리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미미하거나 없는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의 한 축을 흔들 수도 있는 불법 촬영 피해 문제를 IT를 통해 해결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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